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메르 제국 (문단 편집) === 건축 양식 === 앙코르 사원의 최중심부에는 '중앙 성소'가 존재한다. 독보적으로 높게 솟은 탑 형태의 구조인데 [[힌두교]]의 신들이 거주하는 성산(聖山) 메루 산을 상징했다. 힌두 사원일 때에는 보통 [[시바]]나 [[비슈누]]의 신상이, 불교 사찰일 때에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내부는 의외로 상당히 협소한 편이었다. 일반 대중이 예배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신이 직접 깃들어있는 장소였기에 신상 정도만 들어가면 충분했기 때문. 가로폭과 세로폭 모두 몇 m가 넘지 않았고 실제로도 들어가면 몇 명도 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매우 비좁다. 하지만 그 중요성만큼은 사원 전체에서도 가장 높았기에, 언제나 신전 최중앙에만 위치했으며 그 위에 얹혀진 장식의 높이, 화려함, 벽의 장식 따위도 기타 건물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화려했다. [[앙코르 와트]]의 모습을 보면 화려한 탑처럼 생긴 높다란 구조물 5개가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탑 형태의 구조물을 '쁘랑(ប្រាង្គ)'이라고 부른다.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작아지는 다층 구조의 탑 형태지만 실제로 안에는 속이 꽉 차있다. 멀리서보면 마치 손가락이나 [[연꽃]]과도 비슷해보이는 독특한 외양으로 널리 알려진 편. 쁘랑을 높게 지으면 실제 높이보다도 더 높다래보이는 착시효과를 줄 수 있었다. 참고로 크메르 제국의 쁘랑 건축은 훗날 제국이 무너진 뒤 [[태국]]으로도 건너갔다. 수코타이나 아유타야 왕국의 기술자들이 크메르의 쁘랑 기술을 습득해서 태국식으로 재현했던 것이다. 다만 크메르의 쁘랑들은 모두 사암 조각으로 지었던 반면 태국의 쁘랑들은 화려한 도자기나 벽토로 덮어 훨씬 색조적으로 화려한 편이다. 뿐만 아니라 태국 왕실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사찰들에만 한정적으로 지어졌던 것도[* 태국 최고의 사원이자 에메랄드 불상을 봉안한 [[왓 프라깨오]]에는 6개의 쁘랑이 존재한다.] 모든 사원에 쁘랑을 두었던 크메르와의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ower-Angkor_Wat.jpg|width=2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hra-phrang-sam-yot-60f52c5437ddf9.99972782.jpg|width=4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nkor-thom.webp|width=400]]}}}|| ||중앙 성소 ||쁘랑의 모습. 화려한 탑 형태의 건축물이다. ||앙코르 톰의 전형적인 크메르 고푸람의 모습. || 중앙 성소와 쁘랑들 주위에는 길다란 회랑과 갤러리들이 뻗어나가며 사원을 둘러쳤다. 종교적으로는 메루 산을 둘러싼 높다란 산맥을 상징했다. 회랑의 벽들에는 모두 정교한 부조들을 새겨 장식했다. 하지만 아직 크메르의 건축 기술이 크게 발달하지는 못했기에 회랑들의 폭이나 높이는 겉에서 본 것보다 매우 좁은 편이었다. 훗날 12세기 들어 기술이 조금 더 발전하면서 회랑의 안쪽 벽을 훤하게 트고 기둥으로 받치는 형식이 등장하기는 한다. 회랑과 갤러리들을 드나들기 위해서는 입구나 통로가 필요했다. 이 용도로 지어진 건물이 바로 '고푸람'이다. 사실 크메르만의 독특한 구조물은 아니고, 흔히 '인도 사원'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높다란 사다리꼴 형태의 입구 구조물을 모두 이 고푸람이라고 부른다. 크메르 제국 역시 인도 지방에서 고푸람 문화를 수입해서 사원 건축에 도입하였는데, 크메르 고푸람의 경우 보통 십자 형태의 독특한 모양이며 사원의 정방향 중앙에 뚫려있는 경우가 많다. 고푸람의 꼭대기에는 높다란 탑을 하나 세워놓는 경우도 있었으며 앙코르 톰의 고푸람에는 독특한 모습의 사인상을 새기기도 했다. 사원들의 출입구이자 얼굴이기도 했기에 주변에 난간이나 박석을 깔고 무희 무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위의 것들이 전형적인 크메르 사원에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건축 요소들이었다면 시대에 따라 등장하거나 사라지는 용도의 건물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12세기 [[자야바르만 7세]] 시절에 많이 지어진 '무희들의 홀'. 타 프롬 사원, 프레아 칸, 반테이 크테이 사원 등에서 볼 수 있는데 힌두교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무희 [[압사라]]들을 벽에 새겨놓아서 '무희들의 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통 사원의 동쪽 축 정면, 중앙 성소 앞쪽의 직사각형 부지에 지어놓았고 4개의 회랑으로 나뉘어졌다. 12세기 후반에는 '다르마살라'라고 해서 '불의 집'이라는 이름의 독특한 건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두꺼운 벽과 기둥을 가진 석조 건물이었는데 용도가 확실하진 않지만 사원을 방문한 순례객들이 쉬어가는 공간 정도가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1296년 크메르를 방문한 주달관이 이 다르마살라의 아름다움에 대해 경탄하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 그 외에 성스러운 불을 보관하는 공간이 아니었나하는 추정도 있다. [[파일:Angkor_Heli-Star-Siem-Reap-samjamphoto-155-1024x683.jpg|width=500]] [[앙코르 와트]]와 그를 둘러싼 거대한 인공 저수지의 전경. 전성기 시절에는 저 저수지가 신성한 경내와 속세를 구분하는 역할을 맡았다. 크메르 제국이 몰락하고 사원이 버려진 후에도 물이 채워진 저수지가 열대우림이 사원 내부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었기에 상대적으로 유적에 대한 훼손도가 덜해졌다. '도서관'이라는 용도로 지어진 건물들도 있었다. [[앙코르 와트]] 사원 앞쪽에 2개의 건물이 뚝 떨어져 지어진 걸 볼 수 있는데 이게 바로 도서관 건물이다. 이름은 도서관이지만 정확히 무슨 용도로 지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종교 경전들을 보관하거나 제례 용기들을 따로 놔두던 장소였을 가능성을 높게 쳐서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 뿐이다. 보통 사원 정면 앞쪽 넓은 공터에 2개씩 짝을 지어 존재한다. 입구는 일반적으로 서쪽으로 뚫려있다. 사원 주위에는 '바레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저수지]], 혹은 [[해자]]를 파내고 물을 채웠다. 종교적으로는 신성한 사원을 속세와 구분한다는 의미가 있었고 사원 방어와 농경에 필요한 물 공급이라는 실용적인 목적도 겸했다. 앙코르에 남아있는 가장 거대한 2개의 바레이는 앙코르 톰 양편에 위치한 '이스트 바레이'와 '웨스트 바레이'. 웨스트 바레이는 그 크기가 7.8km x 2.1km에 달했고 이스트 바레이 역시 비슷한 사이즈였다. 개중 이스트 바레이는 완전히 말라버렸지만 웨스트 바레이는 아직까지도 물이 남아있다. 크메르 사원들의 독특한 특징들 중 하나가 '템플 마운틴(Temple Mountain)' 기법이다. 거대한 돌들을 마치 산처럼 쌓아올리고 그 위에 사원을 지어놓은 것을 따로 부르는 명칭이다. 힌두교의 메루 산을 현세에 재현한다는 의미가 있었고 주변에 파낸 해자는 신성한 바다의 경계를 의미했다. 템플 마운틴 기법으로 지어진 것들 중 가장 유명한 사원은 뭐니뭐니해도 '바콩 사원'이다. 바통 사원은 5층의 피라미드 형태의 높은 사원인데, 881년 인드라바르만 1세가 지었으며 아마 저멀리 자바의 [[보로부두르]]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크메르의 왕들은 이 높은 사원들을 정례적으로 올라가 그 위에서 제사를 치러야 할 책무가 있었다. 그래서 굳이 사원을 높게 지은 것이 크메르 왕들의 체력을 시험한다는 의미가 있지 않았나하는 추정도 있는데, 높은 계단을 올라가지도 못할 정도로 노쇠했다면 전쟁이 비일비재한 크메르에서는 더이상 왕의 책무를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크메르인들은 바콩 사원 꼭대기의 신전에 시바 신이 현신한다고 믿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